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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4월6일-11일)

조회 수 768 추천 수 0 2020.04.05 17:13:20

삼성교회 가정예배(2020.4.6-11)

 

가정예배 202046()

 

제목: 선을 행하는 자(53:1-6) 찬송 460(301)

 

53편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엘로힘)을 말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엘로힘)이 인생을 살폈을 때 어리석은 자란 창조주가 아닌 자기의 힘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선을 행하는 자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은 있을 수 없음을 마음 깊이 자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높이고 감사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님은 없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것을 단지 불신자들이 행하는 악으로만 여기면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다는 것은 입술로 하는 고백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뜻과 계획을 위해 살아서는 안되고 또한 현재의 형편이 우리의 욕망에 차지 않는다고 불평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뜻과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는 현장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항상 불평과 불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이 어리석음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하는 자란 곧 우리 자신을 향한 선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흩으시고 버리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세상의 힘을 구하고 있으며, 부패하고 가증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복과 은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크신 복과 은혜를 알고자 한다면 부패하고 악을 행하는 우리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예배 202047()

 

제목: 하나님의 이름(54:1-7) 찬송 36(36)

 

다윗은 1절에서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판단하소서라는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는 주의 이름이 곧 주의 힘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이 자기 이름을 온 세상에 내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11:4). 하나님은 이 일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써 사람들을 흩어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 것은 세상에서 높임 받아야 할 이름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이름으로 나타내고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이름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시고 왕으로 세우신 것은 다윗의 이름을 높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윗을 세워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기도는 자기 이름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나타내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곧 자신의 구원자요 판단자가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외인들이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을 치고, 죽이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 앞에 하나님을 두고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이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그 이름만이 가장 영광스런 이름으로 세상에 굳게 세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고난에서도 주의 이름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가정예배 202048()

 

제목: 짐을 맡기라(55:1-23) 찬송 466(408)

 

55편은 다윗이 근심으로 마음이 편치 못할 때 지은 시입니다(2). 그런데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 것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원수가 아니라 가까운 친구였다는 점입니다(13). 그 가까운 친구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다윗을 배신한 아히도벨로 짐작됩니다(삼하 16,17).

우리가 다윗과 같은 일을 겪으면 우리의 심정이 어떠할까요? 전혀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핍박을 받는 것보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나를 배신하고 죽이려고 한다면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탐욕으로 친구를 배신하는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처럼 예수님 이름을 부르면서도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나의 유익을 위한 길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탐욕과 유혹을 이길 힘이 없는 우리의 무력함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이러한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악함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예수님을 붙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것을 착각합니다. 자신이 힘을 다해서 예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을 신앙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내가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어느 한순간도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붙들고 계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길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나의 힘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능력이 살게 하였음을 아는 자만이 모든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예수님이 가신 길로 인도하고 그 길을 훼방하는 대적이 있다고 해도 두려움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주께 붙들려 있음을 아는 성도는 요동함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22).

 

 

가정예배 202049()

 

제목: 악한 세력(56:1-13) 찬송 367(341)

 

다윗은 어디를 가든 생명의 위협과 핍박에 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다윗이 겪은 위협과 핍박은 환경적인 문제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에게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을 죽이고자 한다는 것은 곧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를 보내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혜)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심을 방해함으로써 세상을 장악하고자 하는 악한 세력의 방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악한 세력과의 싸움은 다윗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이 땅에서 겪게 되는 핍박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삶에서의 어려움을 단순한 고난의 문제,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만 인식할 뿐 그것이 악한 세력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도에게 있어서 위기상황은 육신을 죽이는 질병이나 세계 경제 상황의 악화가 아니라 세상의 염려 때문에 십자가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만약 성도에게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2,3)라는 하나님을 향한 절박함이 없다면 그것은 삶에서 겪게 되는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 원수가 존재하여 다윗을 위기에 빠뜨렸던 것처럼, 성도가 존재하는 이 세상은 성도로 하여금 십자가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하고자 하는 악한 세력의 훼방이 존재하고 있는 곳임을 인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가정예배 2020410()

 

제목: 구원의 하나님(57:1-11) 찬송 217(425)

 

다윗은 굴에 숨어있는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2) 이라고 찬송하는 것일까요? 3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인자와 진리를 보내서 자기를 삼키려는 자에게서 자기를 구원하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상황과 상관없이 인자와 진리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일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인자와 진리를 보내사 다윗을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에게는 모든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이 다윗의 삶에서 일부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와 진리로 구원하시는 하나님만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말하면서도 그 은혜가 우리의 전부로 자리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속마음은 세상으로 가득하고, 내 자신으로 가득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우리의 가슴이 아닌 머리에만 남겨 놓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아닌 이것이 곧 우리의 악함인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나온다는 것은 자신의 일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일만을 바라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비록 고통과 어려움의 처지에 있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의 처지와 형편으로 인해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의 형편, 조건과 상관없이 감사할 수 있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일을 찬송하는 것입니다(10,11).

 

 

가정예배 2020411()

 

제목: 하나님의 공의(58:1-11) 찬송 539(488)

 

사람이 공의를 따라 정직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의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정직하게 판단하고 의롭게 행동하려면 철저하게 자기 입장이라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자기 자신은 완전히 버려진 채 오직 의만 그 가슴에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슴은 의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로 가득합니다. 공의보다는 세상에서의 이익에 더 이끌립니다. 정직한 판단보다는 내 입장에서 내게 유리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직 내 중심으로 말하고 행동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완악함입니다. 마치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처럼, 그래서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한다고 해도 그 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의 길로만 가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4,5).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길을 절대로 인정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6-9).

성도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공의와 진실과 정직으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실 때 악한 자는 결국 멸망으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의인은 하나님의 승리에 참여하여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10). 그러므로 지금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현실에서 찾고자 한다면 결국 실망만 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상은 마치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진리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처럼 우리에게 보이는 현실은 악인이 의인을 핍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11)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심판의 권세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약속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계획 그 끝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판단을 바라보고 구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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