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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6월1일-6일)

조회 수 631 추천 수 0 2020.05.31 16:23:56

가정예배 202061()

 

제목: 즐거이 찬송(100:1-5) 찬송 49(482)

 

1절에 보면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상식대로 하자면 즐거운 찬송을 부르기 위해서는 무언가 좋은 일이 있어야 하고 기분이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가 그런 의미로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동일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기쁨이 있기도 하고 슬픔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환경과 상황을 초월하여 모든 성도에게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온 땅이여라는 말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도에게 기쁨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은 설사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고 해도 모두 우리의 생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분과 형편을 초월하여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일하시는가의 문제로 마음이 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나에게 두게 되면 하나님의 일보다는 나의 일이 더 큰 관심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그리하지 마시고 이렇게 해 주십시오라며 자기의 완악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중심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소유된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아픔과 고통의 형편에 처해진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알 때 즐거운 찬송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2()

 

제목: 완전한 길(101:1-8) 찬송 431(549)

 

다윗이 1절에서 여호와의 인자와 공의를 노래하겠다고 합니다. 인자와 공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두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불의를 드러내지만 그 모든 불의를 덮으시고 용서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혜가 있기에 성도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윗은 2절에서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라는 말로 증거합니다.

완전한 길, 완전한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연관된 것입니다. 불의한 자인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인 것입니다.

18:13절에 보면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따라 살 것을 요구하시는데 이것을 완전함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민족의 가증한 행위는 복술자(점 치는 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 등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을 듣는 것은 뭔가 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장래를 미리 알고 그로 인해 흉한 일은 피하고 좋은 일만 있는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장래는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장래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한 마음으로 완전한 길로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가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를 알고 찬송하며 여호와만을 신뢰하는 것으로 향해야 합니다. 완전한 길은 나의 뜻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예배 202063()

 

제목: 기도의 응답(102:1-28) 찬송 403(303)

 

102편은 자기 고통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28절 마지막 구절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고백으로 끝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통으로 인한 탄원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02편에는 고통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다만 17절에서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외적 조건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짐작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적 조건에 의한 행복과 불행은 잠시 동안의 느낌일 뿐이지 우리를 행복의 길로 계속 인도하는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라는 바울 사도의 말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외적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됨으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102편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처한 고통의 현실을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것으로 받아들입니다(10). 자신이 겪는 고통을 죄로 인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통의 삶에서 깨닫게 된 차원이 다른 신앙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13절에서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삶은 고통의 처지에 있다고 해도, 그로 인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시는 것이 최고의 기도 응답입니다.



가정예배 202064()

 

제목: 여호와를 송축하라(103:1-22) 찬송 21(21)

 

성도가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은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길이 됩니다. 이처럼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으로 베풀어진 일을 아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두고 내 속에 있는 것들아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1:28-3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인간의 속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나열합니다. 그것은 불의, 추악, 탐욕 등등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악한 것들입니다. 바울의 말을 근거로 해서 우리 속에 있는 것을 헤아려 보면 결국 악한 것밖에 없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내 속에 있는 것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의 의미는 자기 속에 있는 악을 보면서 여호와를 송축할 수밖에 없는 크신 은혜와 긍휼을 노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절부터 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즉 시편 기자가 감사하고 감격해하는 하나님의 모든 은택은 죄에 대한 긍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을 좋은 것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자신의 악함을 아는 성도에게 좋은 것은 10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죄악을 따라 그대로 갚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이고 인자하심 일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서 나올 것은 악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런 우리는 단지 먼지(진토)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14). 또한 인생은 풀과 같고 누리는 영화 또한 들의 꽃과 같습니다(15). 이러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속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에게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아래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은택으로 충만한 세계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2). 이것이 여호와를 송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가정예배 202065()

 

제목: 주께서 하신 일(104:1-35) 찬송 40(79)

 

104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고 보존하시는 것에 대하여 송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면서도 너무 상투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기가 있어서 호흡을 하면서도 공기가 존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물을 마시면서도 물이 존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것은 그것들을 존재하게 하신 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결국 호흡을 하고 물을 마심으로 생존하면서도 누구의 은총으로 생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신비한 일이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권세로 인한 것인가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송축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로 살아왔음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2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땅은 주께서 지으신 것들로 가득합니다. 어느 것 하나 주로 인해 지음 받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주가 입히시고 먹이십니다(27).

존재하는 것으로만 주를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29절은 호흡을 멈추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주께서 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31절에서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하신 일로 즐거워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사람이 하나님을 즐겁게 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34절처럼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소유하고 누리는 세상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가를 안다면 세상 것과 상관없이 지금 나를 존재하게 하신, 그것도 예수님을 알고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일로 인해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 202066()

 

제목: 진정한 감사(105:1-45) 찬송 405(305)

 

105편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증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8-10절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 이었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리고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 나그네로 거하게 된 일, 그리고 미움을 받게 된 그 모든 고달픔도 우연이 아니라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곧 바로 들어가게 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야곱의 가족을 그들이 거주한 땅에서 크고 강한 민족이 되게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한 과정을 겪게 하셨다는 것은 단지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시편 저자가 언급한 역사적 사건이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감사와 찬송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송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와 찬송은 현재 무엇이 주어졌는가와는 상관없이 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베풀어졌음을 알 때 가능합니다.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비록 감사와 찬송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일 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것보다 적다고 여겨지면 감사와 찬송보다는 불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가족을 굳이 애굽으로 보내시고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장차 그들이 누리게 될 가나안 땅의 축복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부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천국 백성으로 삼으신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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