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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6월15일-20일)

조회 수 517 추천 수 0 2020.06.14 15:31:58

가정예배 2020615()

 

제목: 복 있는 자(112:1-10) 찬송 543(491)

 

기독교인들 중에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이 마치 믿음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믿음은난 할 수 있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거야라는 자기 암시가 아니라주가 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주의 일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나의 유익을 위한 선한 일로 믿고 어떤 일에도 두려움이 없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견고한 마음입니다(8).

하지만 우리가 이런 견고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7절을 보면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흉한 소식을 듣게 되면 불안하게 되고 잠도 자지 못하게 됩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우리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견고한 마음은 우리가 스스로 결심하고 마음을 굳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을 붙들어서 하나님께 두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견고한 마음이야 말로 성도가 추구해야할 하나님의 복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 즉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나라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은 세상의 것이 많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의 편한 삶을 행복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성도가 진심으로 행복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믿음 안에서 성도는 어떤 일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견고한 마음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은 세상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2절부터의 내용입니다. 2절부터 복의 내용에 대해 말하는데 후손이 땅에서 강성한다고 하고, 3절에서는 부요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직, 자비, 공의에 대해 말합니다.

사실 부와 재물은 정직, 자비, 공의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같은 복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부와 재물도 곧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는 말을 하는데 부와 재물은 이스라엘의 사고방식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부와 재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또 그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그들을 강성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부와 재물이 있게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부자 되는 것이 복이 아니라 부요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증거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었다면 부와 재물이 있다고 해도 마음을 하나님께 두었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정의와 정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의와 정직에 의해서 5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계명을 즐거워하는 복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1).

하지만 지금은 부와 재물을 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진정한 부요가 되는 다른 세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이루신 하나님나라이며 이 나라에 마음을 두는 자가 복 있는 자인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16()

 

제목: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113:1-9) 찬송 40(79)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가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알고 그 일을 높이고 찬양하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스스로 있는 자라고 답하신 것은 이름을 알려주는 말씀이 아니라 모세를 보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어떤 분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하신 분이고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2).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찬양하는 것을 소극적인 태도로만 여기고 찬양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애당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행함은 우리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높이고 감사하는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기에 자신의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며 늘 자신에게 주어진 형편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고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처럼 높으신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셨다고 말합니다(5). 하나님이 스스로를 낮추신 일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낮아지심의 의미를 안다면 낮아짐을 소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러한 성도가 가난하고 궁핍하고 잉태하지 못한 여인, 즉 약자를 세우시고 높이신 하나님의 긍휼로 인해 감사하며 할렐루야를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17()

 

제목: 거룩한 백성(114:1-8) 찬송 434(384)

 

본문은 출애굽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경우에도 출애굽 사건을 잊지 말아야 했는데 왜냐하면 출애굽 사건에는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역사하시는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곳이고 영토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성소와 영토는 모두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백성의 관계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출 19:5,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출애굽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나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그들이 제사장 나라고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러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출애굽하게 하시고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는 제물의 희생이 있음으로 이스라엘의 죄가 용서되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살아 역사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소에서 늘 높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성소 되기 위해서는 필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통해서 드러나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백성 될 수 없는 자신들을 붙드시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 자비하심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들이 거룩한 백성이고 성소 된 자들입니다.



가정예배 2020 6 18()

 

제목: 우상( 115:1-1-18) 찬송 102( 94)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상을 형상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신적인 존재를 만드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즉 나를 위해서 나를 돕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우상의 본질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이 아론을 충동질하여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여기며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책망하실 때자기를 위하여송아지를 부어 만들었다는 말씀을 합니다( 32:8).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신앙이 아닌 우상 숭배일 뿐입니다.

2절을 보면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는 조롱을 세상이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형편을 통해서 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신을 자기를 섬기는 자를 도와주며 고통과 아픔에서 건져주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신을 섬기며 찾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통과 아픔이 계속될 때네가 믿는 신이 어디 있느냐?’라는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위 불행이라고 여기는 일들이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도우신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기복신앙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자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함께 하시고 돕고 계심을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자기를 위한 신으로 여기는 것이고 우상을 찾는 본질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115편은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로부터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의 말을 들을 정도로 고통에 처한 상태에서 진심으로 복 받은 자의 생활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 헛되고 허무한 일임을 알려 줍니다. 우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생명 없는 형상일 뿐인데 거기에 절을 하며 복을 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말합니다(4-7).

무엇보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을 자신의 정성과 열심에 감동하여 뜻을 돌이키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현대 교인들도 하나님을 그러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두게 됩니다.

행함이 어떤가에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의 여부가 결정되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행함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 역시 우상 숭배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상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1절에서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옵소서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은 영광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으로 우상의 문제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상은 자기 영광을 위해 신을 찾는 것이지만 신앙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존재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12,13절에 보면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집은 일반인의 집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아론의 집은 제사장 집안입니다. 이처럼 복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복 있는 자는 어떠한 처지와 환경에 처하더라도 생명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이러한 신앙의 자리에 붙들어 놓기 위해 도우시고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도움이시요 방패시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19()

 

제목: 성도의 믿음(116:1-19) 찬송 383(336)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그 믿음은 어떤 형편, 어떤 자리에서도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능력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저자는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심한 환난과 슬픔을 만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니고 8절에서는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라고 말하고, 10절에서내가 큰 곤란을 당하였도다라는 말에서 저자의 현실적인 고난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저자는 먼저 하나님에 대해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1)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자신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건져 달라고 기도합니다(4). 영혼을 건져 달라는 것은 단지 환난과 슬픔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은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는 기도는 환난과 슬픔에 처한 고통의 형편에서도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굳건히 붙들려 있기를 소원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난과 슬픔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인간의 연약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성도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미 보답할 수 없을 정도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환난과 슬픔도 은혜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이것을 믿기에 성도는 환난과 슬픔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서 나타나는 믿음의 특징입니다.



가정예배 2020620()

 

제목: 찬송의 이유(117:1-2) 찬송 21(21)

 

1절을 보면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은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고 그 행하심을 아는 자에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를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진실하심은 세상의 가치관에서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는 육신의 잘됨을 하나님의 인자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육신의 잘됨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 세상에서의 출세나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죽음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거나 머나먼 미래에 생각해도 될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삶을 부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육신의 잘됨에 매이는 것입니다.

생명의 문제 앞에서 세상의 일은 사소한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생명보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인자와 진실하심으로 누리게 된 생명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자와 진실하심으로 일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하심에 옳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성도는 이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성도가 이 안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면 세상과 다른 길을 가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진실하심이 우리를 이러한 삶으로 이끄심이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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