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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6월22일-27일)

조회 수 359 추천 수 0 2020.06.21 14:53:45

가정예배 2020622()

 

제목: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118:1-29) 찬송 478(419)

 

하나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일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6절의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는 구절에 마음이 끌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말할 때 그 말에 합당한 자가 어떠한 자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노래합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찬송은 4절까지 반복되고 있고 마지막 구절인 29절을 보면 1절과 동일한 내용으로 끝납니다. 이것을 보면 118편의 저자는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자신의 삶에서 깊이 경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그 어떤 고통과 비참한 사건에서도 훼손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지진이나 해일로 인해서 수십만 명이 죽는 재앙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훼손되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생존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생명과 연관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생존의 문제에서는 하나님의 인자의 영원하심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문제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우리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영원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고통 중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5). 그리고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14)고 노래합니다. 저자는 십자가에서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함께 하는 것으로 여호와가 내 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가정예배 2020623()

 

제목: 복 있는 자(119:1-16) 찬송 338(280)

 

성도는 말씀이 없이는 참된 진리의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말씀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나 같은 자에게 어떤 일을 행하시며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는가를 알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을 통해서 말씀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 우리도 시편 저자처럼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77)이고 주의 말씀이 꿀보다 달다’(103)는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1절을 보면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함으로 행위가 완전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행위가 완전한 것 자체가 복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 있는 자이기에 행위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는 무능력에 있습니다. 의를 이룰 수 없는 무능력입니다.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의 길을 갈 수 없으며 선을 이루고 복을 받는 길로도 갈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실체를 율법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죄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따라서 행위가 완전하다는 것은 행동이 윤리 도덕적으로 흠이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인도하는 바를 따라 바른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1,2절을 살펴보면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와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서로 동일하게 복 있는 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가 여호와를 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무능과 불의를 깨닫게 된 자는 여호와가 아니면 생명에 이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주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10). 이것이 말씀 앞에서 불의를 행하지 않고 완전한 길로 행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가정예배 2020624()

 

제목: 주가 주시는 화평(120:1-7) 찬송 473(411)

 

환난 중에 있는 저자의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2)라는 부르짖음을 통해 그 환난이 사기나 모략, 중상과 같은 속이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속이는) 혀로 횡포를 일삼게 되는 것은 세상이 힘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성도는 세상이 무시하고 허황된 것으로 여기는 생명을 추구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 자체가 성도에게는 환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환난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이 가는 길과는 다른 길로 감으로 인해 겪게 되는 것이 환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성도에게 화평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예수님은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0:34)는 말씀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성도의 삶의 토대는 말씀입니다. 세상 권력과 힘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을 지향하는 것이 성도이기 때문에 그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5절에서는메섹에 유하며 게달의 장막 중에 거하는 것이 내게 화로다라는 말을 합니다. 메섹은 야벳 자손이고 게달은 이스마엘의 자손입니다. 이들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밖에 있는 족속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세상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이들과 함께 머무는 것은 화일뿐입니다. 그들과의 화평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7).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건지시기 위해 하시는 일이 우리를 믿음 위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의 존귀함을 알게 하시고 생명에 마음을 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입니다. 이 평안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예배 2020625()

 

제목: 나를 지키시는 분(121:1-8) 찬송 460(30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고 시작하는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을 향하여 눈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시온 산을 바라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자는 하나님에게로부터 어떤 도움을 기대했을까요?

저자가 하나님에게서 육신의 문제를 위한 도움을 받고자 했다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을 바라봤을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도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절처럼 오직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일 것입니다. 영혼의 문제를 도우실 분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죄에 붙들려 있습니다. 마귀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해 살 뿐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영원한 죽음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고 자비하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마귀의 유혹으로 죄에 빠져 삽니다. 이러한 우리를 도와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재물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영원까지 계속되어진다는 것이 8절의 말씀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어떤 환난과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키심 아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과 환난에서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성도 된 우리의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예배 2020626()

 

제목: 평안(122:1-9) 찬송 469(412)

 

시편 기자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이 큰 기쁨이고 감격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1).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평안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6,7). 이 평안이 성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해야 할 신앙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평안(평화)은 성전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불화를 전제로 하는 단어이고, 세상에서 불화의 첫 근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불화 관계이며, 이 관계의 해결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불화의 관계에 있게 된 원인은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평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들끼리 잘 어울린다고 해서 평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평화는 죄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은 가식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생명에서 단절되었다는 뜻이고,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가 평화의 관계로 바뀌어야 생명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다만 예수 그리스도로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미리 증거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성전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 받고 참된 생명의 길이 열렸다는 것에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고 말합니다. 형통은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사랑함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기자가 경험한 평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27()

 

제목: 긍휼(123:1-4) 찬송 486(368)

 

기자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주로 일컬으면서 눈을 들어 주께 향하고 긍휼(은혜)히 여기시기를 기다린다고 말합니다(1,2).

그런데 하나님은 기자를 멸시의 자리로 이끄셨습니다(3,4).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멸시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는 멸시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아는 자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고 매일의 삶에서 은혜를 실감하고 경험하면서 감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은혜를 잊고 삽니다. 오히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들보다 적다는 이유로 불만만 가득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회복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은혜에서 단절되었을 때의 결과를 앎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123편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라면 은혜는 성전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멋대로 내가 원하는 것, 내게 좋은 것을 끌어다가 은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은혜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 말고 우리의 영혼에 생명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참된 은혜임을 성전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 상전에게 구하는 것은 다만 자신을 불쌍히 생각하고 긍휼히 여겨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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