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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5월11일-16일)

조회 수 651 추천 수 0 2020.05.10 15:00:24

가정예배 2020511()

 

제목: 진정한 힘(82:1-8) 찬송 93(93)

 

성경은 사람을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하지만 세상은 사람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강자가 되기 위해 돈이든 권력이든 힘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불공평한 판단’(2)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성경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상의 힘이 결코 권세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은 힘을 가지고 그 힘으로 신처럼 군림하려고 합니다. 힘없는 자를 자신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찌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찌니라 하시는도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모든 것이 주인 되신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이러한 모습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을 자기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6,7절은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고 말합니다. 신처럼 지존자의 아들처럼 행세하는 힘 있는 자라 할지라도 결국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죽음의 권세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힘도 무용지물이고, 모든 사람이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흙으로 사라지는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세상에서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는 능력 뿐입니다. 그 능력이 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죄인 된 자에게 유일한 희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안식과 평안 역시 예수께 있으며 예수님 만이 힘이 되시고 권세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512()

 

제목: 우리의 기도(83:1-18) 찬송 268(505)

 

성경의 중심 정신이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오늘 83편을 읽어 보면 사랑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듯 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83편이 원수를 저주하고 보복하기 위한 내용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아삽이 말한 원수는 누구이고 그들이 행한 악은 무엇일까요? 3,4절을 보시면 주의 백성을 치려고 간계를 꾀하면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원수가 행한 악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6절부터 보면 원수로 거론된 나라 모두가 이방 나라입니다. 즉 이방 나라가 주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치려고 간계를 꾸미고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려는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방인이 원수라면 이들에 대한 가장 좋은 보복은 이방인이 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멸망시켜 달라고 하면 되는데, 아삽은 16절에서 “여호와여 수치로 저희 얼굴에 가득케 하사 저희로 주의 이름을 찾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이름을 찾게 해달라는 것은 이방인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7,18절도 다르지 않습니다. 17절의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사라는 구절을 보면 이방인을 멸망시켜 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보복을 위한 기도처럼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론은 원수들이 여호와라는 주만 지존자로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삽은 결국 원수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결국 83편은 원수를 향한 저주의 기도가 아니라 사랑의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아삽의 기도가 우리들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가정예배 2020513()

 

제목: 주의 집(84:1-12) 찬송 457(401)

 

84편은 복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 주제입니다. 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어떻게 하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인가?’가 아니라무엇이 복인가?’의 문제입니다.

현대 교회가 복을 세상과 연결하여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성공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환경을 누리는 것을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도 그런 것을 복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시편 기자의 주의 집을 향한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주의 제단, 주의 집은 모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와 제사를 드리던 성전을 말합니다.

주의 집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그 긍휼과 자비에 대한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곳이 주의 집입니다. 따라서 기자는 주의 집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거할 수 있는 것을 복으로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모든 관심이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때문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한다면 그것은 내가 원하는 나를 내려놓았을 때 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에게 초점을 두었을 때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찬송이 주의 궁정, 주의 집에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궁정에서는 한 날을 살아도 죄가 용서된 거룩한 자로 살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곳은 아무리 화려한 곳이라고 해도 용서의 은혜 밖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주의 궁정에 거하는 것이 분명 복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은 주와 연결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복 있는 자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514()

 

제목: 구원의 하나님(85:1-13) 찬송 427(191)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는 모습이냐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뜻이라는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이 말에 내포되어 있는 본질적인 의미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그저 지금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계속 들어왔던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생각하며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초점은 오직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두어야지 인간의 행함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행하심만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행하심만 높이고 찬송할 뿐 인간의 행함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실천했고 어떤 열심이 있든 그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주관하신 은혜의 결과로 받아들일 뿐이기에내가 했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실질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도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구원되는 문제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 성도는 결코 자신의 것을 내어 놓지 않게 됩니다. 다만 내어 놓는 것이라면 자신의 무능함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주의 구원, 구원의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 2020515()

 

제목: 영혼의 기쁨(86:1-17) 찬송 495(438)

 

다윗이 곤고하고 궁핍한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습니다(1). 그리고 그 곤고하고 궁핍한 처지에서 구원 받기 위해 다윗이 추구하는 것이 영혼의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2),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4)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말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하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린 성경을 통해서 영혼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혼이라는 단어를 육신과 전혀 다른 보이지 않은 어떤 신비적 것으로 인식하면 영혼의 기쁨이라는 것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많은 경우 성경에서 육신과 영혼은 인간의 존재를 구분하는 의미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나누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으면 영적인 존재이고 그렇지 않으면 육적인 존재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생명에 속한 자를 영, 또는 영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만족은 세상 것으로 가능하지만 영혼의 만족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고후 3:5).

그러므로 2절에서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라는 말에서의 구원의 의미도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영혼에 기쁨이 있고 만족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며 도우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을 보게 된다면 성도는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의 기쁨이며 만족입니다.



가정예배 2020516()

 

제목: 존재 가치(87:1-7) 찬송 49(482)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보다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가에 더 의미를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찾는 이유도 대개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나 자녀들을 향해서도 이런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자신의 존재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사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가에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사람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를 비교해 보면 세상에서의 존재 가치는 분명 부자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지로 산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국을 두고 생각해 보면 믿음이 그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존재 가치의 기준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른 믿음의 시각입니다.

4절은 이방인의 존재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5절은 시온의 사람들 역시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7). 이것이 바로 시온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 나라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시온의 문으로 출입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주의 피로 용서함을 입은 성도들이고, 6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 수를 세시고 등록해 놓으신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존재 근원이며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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