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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4월27일-5월2일)

조회 수 623 추천 수 0 2020.04.26 16:12:14

가정예배 2020427()

 

제목: 성도의 찬송(70:1-5) 찬송 363(337)

 

다윗이 자기를 핍박하는 원수에 대해서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2,3). 우리는 대개 이러한 기도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핍박을 받는 자기 백성을 세상에서 힘 있는 자로 만들어서 승리하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힘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방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당신의 백성을 낮아지고 세상이 거부하는 길을 가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를 무안하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세상은 실패의 자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실패와 고통의 길은 거부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패와 고통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죽음조차 거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이야 말로 원수를 무안하게 하시고 수치스럽게 하신 것입니다.

사단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내게 있는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것을 의지하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의지하는 이것이야 말로 성도에게는 실패와 함께 수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를 인한 기쁨과 즐거움은 자신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를 인한 기쁨과 즐거움은 주로 인한 구원을 바라보았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4). 자신은 가난하고 궁핍하여 세상을 이길 힘이 없음을 아는 자는 세상을 이길 힘이 아닌 힘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를 소원하게 됩니다(5).

이러한 소망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사단을 이기시고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신 광대하신 하나님의 일이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대하시다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428()

 

제목: 성도의 열망(71:1-24) 찬송 511(314)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은 죽음의 권세에 붙들려 죽음의 자리로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의 자리로 끌려가고 있다는 증거가 늙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늙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젊어지려고 애를 씁니다.

불신자에게 죽음은 세상에서 자기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므로 늙는 것을 늦춰보려고 하는 것이 열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성도에게 있어서 늙어지고 죽는 것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늙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고 늙어갈수록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하며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굳게 서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15절을 보면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는 말을 합니다. 늙어 백발이 되더라도 주의 의만 전하겠다는 것이 시편 기자의 열망입니다.

성도가 주의 의를 전하고 증거하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건강과도 물론 상관이 없습니다. 돈과도 상관없고 세상의 지위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자신을 사망에서 건지시고 거룩하게 하신 의만을 자랑하고 감사하고 높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있어야 할 열망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십자가 복음만이 자신을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의가 됨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노년이 되고 백발이 무성해도 여전히 주의 의만 증거하고자 하는 열정에 붙들려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예배 2020429()

 

제목: 가난한 심령(72:1-19) 찬송 332(새 274)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사랑과 은혜가 넘치고 모든 교인들이 서로 좋은 관계로 지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과연 교회를 아무런 문제없이 사이좋게 지내는 교회로 만드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시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가득한 우리를 교회로 모이게 하시는 것은, 홀로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내 자신의 악함을 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의 은총에 붙들려 있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 은총을 발견하고 깨달음으로써 예수님의 의로우심만 자랑하고 높이는 교회로 굳게 세우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의로 백성을 판단하는 왕에게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에서 벗어난 죄인일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시는 시각입니다.

이처럼 백성을 주의 의에 미치지 못한 죄인으로 보게 된다면 백성을 살리는 것은 오직 주의 의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이러한 마음을 가진 왕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주의 의로 백성을 판단하는 왕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참된 왕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4절을 보면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신원하시고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함께 하는 성도는 죄인 된 나를 살리는 것은 주의 의밖에 없음을 알고 주의 의만 의지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성도를 예수님은 결코 외면치 않으십니다.



가정예배 2020430()

 

제목: 악인의 결국(73:1-28) 찬송 471(415)

 

신자가 살아가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는 악인의 형통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가 복을 받아 잘 살고 악인은 심판을 받아야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고 세상의 질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겪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한 현실을 목도할 때마다 사람들은하나님이 계신 세상이 왜 이러냐?’라고 한탄을 합니다.

저자가 겪은 현실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4-9절을 보면 악인들이 세상에서 어떤 형통을 누리는가에 대해 말합니다. 도무지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여서 거의 실족할 뻔 하였다고 말합니다(2).

그런데 시편 기자는 악인이 형통하는 모순적인 세상의 현실에서 답을 얻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소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 악인의 마지막을 깨닫게 된 것이 답이었던 것입니다(17).

하나님의 성소에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가려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악인에게는 이처럼 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없는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 자신은 양심껏 살았고 착한 일도 하면서 도덕적으로 잘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인이 형통한 것을 두고모순이다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도 또한 악인일 뿐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 우매하고 무지한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나오게 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세상의 참된 현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세상에서 건강하고 편안히 살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28).



가정예배 202051()

 

제목: 언약(74:1-23) 찬송 448(447)

 

지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면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여기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주의 성소를 불사르고 하나님의 회당까지 불사르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1).

성전이 이방인에 의해 부서지고 유린당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이방인을 몰살하는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원하는 그런 표적이 없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우리의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답답한 상황인 것입니다.

이따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시편기자가우리의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라고 호소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하나님의 표적들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예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 시편 기자의 호소가 우리의 호소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영원히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며 언약을 돌아보소서’(20)라고 말합니다. 현실이 어떻다고 해도 하나님은 언약을 결코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이루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가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지지 않고 이길수 있는 것은, 어떤 현실이 주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 같은 비참한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언약은 파기됨이 없음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믿는 것이야 말로 성도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52()

 

제목: 주의 이름(75:1-10) 찬송 93(93)

 

1절을 보면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세상에서 힘이 되는 것이 주어졌을 때, 즉 우리가 의지할 만한 것이 주어졌을 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자 하는 것도 모두가 세상에 힘 되는 것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연 우리에게 세상에서 힘 되는 것을 주시고 그것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일하시는 분일까요? 그러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힘이 주어지면 힘을 바라보고 의지할 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주의 이름으로 가까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의지하고 있는 세상의 힘 되는 것을 무너뜨림으로써 세상에 의지할 것은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를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주의 이름입니다. 즉 주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주가 내게 오셔서 어떤 일을 벌이시고 나를 어떠한 길로 인도하시는가를 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이름이 가까운 것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이 곧 자신에게 진정한 복이 되고 생명이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이 가까이 옴으로써 무너지는 것은 나의 이름입니다. 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살았던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발견하면서 주의 이름만이 높임 받기를 소원하게 되는 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행악자의 뿔, 즉 세상의 힘의 결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정하신 때와 기한이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세상에 어떤 일을 행하실지를 바라보며 세상의 뿔이 아니라 주의 이름이라는 뿔을 높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를 살리는 참된 힘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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