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오늘 방문자수 : 164
어제 방문자수 : 57
총 방문자수 : 1,543,187

  HOME 소식과알림 자유게시판  

가정예배(5월18일-23일)

조회 수 617 추천 수 0 2020.05.17 14:23:26

가정예배 2020 5 18()

 

제목: 하나님의 침묵( 88:1-18) 찬송 434(384)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 받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이 은혜의 말씀이라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성경이 은혜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가, 그리고 문구들이 은혜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내용을 읽고 은혜가 된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내용들도 성경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 내용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해주는 중요한 기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탄이 하와를 유혹한 말이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을 통해서 인간의 나약함을 알게 되고 그러한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써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88편도 다르지 않습니다. 88편을 읽어보면 그 내용만으로는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의 절망과 한탄으로 가득한 이 내용이 무슨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시편 기자가 비록 극심한 고난에 처해 있고, 그의 기도에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그 얼굴을 숨기셔서 잠잠하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초점을 두고 88편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구원의 세계를 열어가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곤란에 처해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일은 중지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 또한 확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확신으로 인해서 성도는 어떤 상황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 안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 세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잠잠하시고 침묵하시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붙들어 생명으로 인도해 오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든든함입니다.



가정예배 2020 5 19()

 

제목: 찬송과 탄식( 89:1-52) 찬송 455( 370)

 

성도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단지 창조주시고 유일하신 신이시기 때문에 찬송해야 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행하신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를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찬송시라고 볼 수 있는 본문중에 탄식이 들어가 있습니다. 47절에서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라고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서 인생을 허무하게 창조하신 것을 두고 탄식을 합니다.

사실 인생을 두고 보면 허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00년의 세월도 견디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인생을 생각하면 허무하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처럼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구원은 더 깊은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을 보면 시편 기자의 탄식은 단지 짧은 인생만을 생각하며 한탄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생의 허무함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기쁨으로 더 깊이 나아가는 탄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둠에서 생생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불평과 낙심과 탄식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생명 사건이 빛으로 다가오게 되면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가 존귀한 선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인생의 허무함을 아는 탄식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생명의 가치를 깨닫게 될 때 성도로서의 찬송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무하고 무능력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런 우리를 구원의 세계에 참여하게 하겠다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였습니다.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34)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생각하시고 하나님으로 인한 참된 찬송이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예배 2020520()

 

제목: 인생무상(90:1-17) 찬송 544(492)

 

본문을 읽으면서 대개 생각하는 것이 인생무상일 것입니다. 3절의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6절의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라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무상을 생각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이나 덧없다는 것은 홀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붙드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아온 성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떤 의미로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는 것일까요?

6,7절을 보면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라고 인생이 시드는 것을 주의 노에 소멸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8,9절에서도 모세는 인생을 죄 가운데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죄악 가운데 사는 것이 인생이고 하나님의 분노 아래 있는 것이 인생이므로 70을 살든 80을 살든 결국 멸망에 이를 것임을 생각한다면 자랑할 것이 없고 남는 것은 오직 수고와 슬픔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참된 의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알아야 합니다(11). 인생이 주의 진노 아래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 인생을 계수하는 지혜로운 마음인 것입니다(12). 이처럼 인생을 계수하며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이 있게 되면 불쌍히 여겨달라는 고백이 있게 됩니다(13). 이러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이 만족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14). 모세는 이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인자를 모르는 인생이야 말로 진심으로 덧없고 허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인생무상입니다.



가정예배 2020521()

 

제목: 피난처(91:1-16) 찬송 448(447)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재앙과 환난에서 건지신다는 말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3)고 하고,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7)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질병을 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재앙으로부터 어떤 화도 겪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91편이 비록 들을 때는 힘이 되는 내용이지만 우리 현실에 빗대어 생각하면 실감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91편은 어떤 시각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성도는 하나님과 육신의 문제가 아닌 영혼의 문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게 하신 궁극적인 이유가 육신의 문제가 아닌 영혼의 문제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증케 하는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육신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나약하고 무기력한 죽음과 실패의 자리일 뿐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자리였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로 증거된 것입니다.

바울은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8:35)는 말을 합니다. 바울은 성도가 세상의 환난과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어떤 환난과 곤고와 핍박 등을 겪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승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승리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522()

 

제목: 안식(92:1-15) 찬송 478(419)

 

시편 92편은 안식일의 찬송 시입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한 시라는 것입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으로부터 기원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찬송하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자유케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곳에서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신 것도 약속의 땅에서 누리게 된 모든 것이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하심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4절에서 주께서 나를 기쁘게 하신 일을 높이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이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1-3).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주의 인자와 성실로 존재하고 있음을 노래하는 자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에 많이 둔감합니다. 어리석고 무지해서 늘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베풀어지는 일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6).

사실 우리 모두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고 주의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번성하든 빈곤하든 상관없이 모두 영원히 멸망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일 뿐입니다(7).

그러한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자리에 있던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들소의 뿔같이 높이신 것입니다. 이것이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서 생명을 누리며 영원히 쇠함이 없는 진정한 번성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뜰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지키시고 가꾸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로 인해 성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성도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와 힘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안식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523()

 

제목: 하나님의 통치(93:1-5) 찬송 40(79)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이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으며 그 어떤 일들에 대해서도 부당하다고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기서를 보면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 아래 욥을 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탄이 욥을 쳐서 온 몸에 종기가 나게 함으로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욥은 이런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2:10)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만이 아니라 화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 욥이 아는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고 말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가 스스로 권위를 입으시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증거가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실재로 눈에 보이는 것을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라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권위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증거를 봅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십자가를 믿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로 일하시는 위대하신 일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믿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우연이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되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까지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존으로 보게 되는 이것이 믿음의 시각인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자유게시판 이용 안내 anonymous 2008-10-31 16207
26 가정예배 2020년 6월 29일(월) 관리자 2020-06-28 430
25 가정예배(6월22일-27일) 관리자 2020-06-21 361
24 가정예배(6월15일-20일) 관리자 2020-06-14 519
23 가정예배(6월8일-13일) 관리자 2020-06-07 581
22 가정예배(6월1일-6일) 관리자 2020-05-31 633
21 가정예배(5월25일-30일) 관리자 2020-05-24 590
» 가정예배(5월18일-23일) 관리자 2020-05-17 617
19 가정예배(5월11일-16일) 관리자 2020-05-10 652
18 가정예배(5월4일-9일) 관리자 2020-05-03 707
17 가정예배(4월27일-5월2일) 관리자 2020-04-26 624
16 가정예배(4월20일-25일) 관리자 2020-04-19 597
15 가정예배(4월13일-18일) 관리자 2020-04-12 665
14 가정예배(4월6일-11일) 관리자 2020-04-05 768
13 가정예배(3월30일-4월4일) 관리자 2020-03-29 700
12 가정예배(3월23일-28일) 관리자 2020-03-22 773
11 가정예배(3월16일-21일) 관리자 2020-03-15 704
10 가정예배(3월9일-14일) 관리자 2020-03-08 908
9 2016 여름 비전파워(오병이어) 비전캠프 [키즈/청소년/청년] imagemovie 오병이어 2016-07-07 7006
8 당회 보고서 file 관리자 2016-06-15 5654
7 2013-08-18 주일설교노트 Pablo 2013-08-25 6890



교회소개
인사말
교회발자취
섬기는분들
예배안내
구역예배안내
오시는길
웨슬리안교회는?
말씀과찬양
주일예배
수요예배
정동석목사 설교모음
서영민목사 설교모음
특별집회
성가대찬양
양육과훈련
새가족반
1:1 제자양육
웨슬레교리학교
성결론(성화론)
요한계시록강해
교제방
중보기도방
간증 및 나눔
사진방
기독교관련자료실
소식과알림
교회소식
교회일정
찬양팀소식
자유게시판
관리자F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