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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6월8일-13일)

조회 수 581 추천 수 0 2020.06.07 18:13:10

가정예배 202068()

 

제목: 감사하라(106:1-48) 찬송 342(543)

 

1절을 보면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는데 이 같은 말들은 우리들의 귀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하다고 하는지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형식적인 감사로 지나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영원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택한 자에 대해서는 그 인자하심이 취소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신과 원망을 일삼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선함과 인자로 다스리면서 끝까지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106편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배신하고 실패한 죄와 허물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어떤 악함에도 불구하고 취소됨이 없기에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실제적인 감사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무능과 실패는 바로 우리들의 무능과 실패를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6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중요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접하면서 생생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지도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심은 온통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형통할 때는 하나님의 인자를 잊고, 힘들 때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자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떤 길로 인도하시는가를 알게 되면 비록 어렵고 힘든 현실에 부딪힌다고 해도 원망과 불평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9()

 

제목: 기이한 일(107:1-43) 찬송 448(447)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해도 우리의 삶에 주어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볼 수 없다면 감사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설사 감사한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이고 가식일 뿐이며 좋은 일에 대한 잠시 동안의 반응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놓치고 있었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4,5절을 보면 바벨론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위해 광야 사막에서 고생을 하는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향해 감사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맹목적으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광야를 유리하는 고통의 그 형편에서도 여호와는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것은 고통의 형편으로 인해서 여호와를 찾고 부르짖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의 포로 생활과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겪는 광야에서의 고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한 도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고 부르짖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인생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일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 편안함을 누리는 것을 선하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복을 주신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록 고통과 힘든 형편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에게 함께 하고 계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앎으로 인해서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10()

 

제목: 하나님의 구원(108:1-13) 찬송 434(384)

 

시편을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노래하라, 찬양하라, 송축하라,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같은 말과 함께 언급되는 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면서 찬송하라고 하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일을 말하면서 찬송하라고 하고,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을 말하면서 찬송하라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 산 적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108편의 중심 내용입니다.

8,9절의 말씀대로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안다면 내 삶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삶에 대해 알지 못한 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 기준으로 살겠다 못 살겠다 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푸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소유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생명이라는 분명한 뜻을 세우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12절에 보면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는 말을 합니다. 사람의 구원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스스로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손으로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참된 구원이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손으로 이뤄내는 것이 없고 남보다 적다고 해서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되고 있음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구원이 되신다는 것에 마음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예배 2020611()

 

제목: 상한 심령(109:1-31) 찬송 405(305)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성경에 어울리는 내용일 것인데 109편은 다윗이 누군가에 대해 저주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절에서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잠잠하지 마옵소서라는 말은 다윗의 원수에 대해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원수는 다윗의 선을 악으로 갚고 다윗의 사랑을 미움으로 갚으며 다윗을 대적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떠오르는 것이 예수님에 대한 인간의 악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선과 사랑에 대해 악과 미움으로 갚았을 뿐입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 입니다.

그러므로 109편은 다윗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하여 우리가 예수님의 선과 사랑에 대해 악으로 갚은 원수들이며 그런 우리에게 마땅한 것은 저주이며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절에서 “이는 대적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가 여호와께 받는 보응이니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바로 여호와께 저주의 보응을 받는 것이 마땅한 예수님의 대적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이처럼 저주의 보응이 마땅한 것이 우리의 실상임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다윗의 기도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22절의 중심이 상했다는 것은 상한 심령을 말합니다. 상한 심령은 죄를 알고 자신의 비참함을 깨달으며 주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심령을 말합니다. 이처럼 상한 심령이 되면 자신을 건지는 것은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선하심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대적하고 저주가 당연한 나 같은 자에게 주어진 놀라운 은총의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의 인자와 선하심이 나를 건졌음을 고백하며 이웃에 대해서도 주님의 인자와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예배 2020612()

 

제목: 헌신(110:1-7) 찬송 351(321)

 

110편은 그리스도가 왕이 되셔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고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임을 계시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이미 오신 분이시고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에 대해 말하는 본문의 내용은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는 불필요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사도에 대한 경계의 말을 했고, 지금 이 시대에도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이 성행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성경이 계시한 메시아가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발등상 되게 한다는 것은 굴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메시아의 원수를 굴복시킬 것임을 말씀하는 것이고 이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원수에 대한 승리며 사탄의 굴복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우리가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의의 행함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고 사탄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했다는 이것이 믿음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면 성도는나의 행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의 행함과 열심에 의미를 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것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무엇을 행하든 그 모든 것은 주님의 하게 하신 것이며 따라서 주의 은혜일 뿐이라는 고백이 나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 즐거이 헌신하는 것입니다(3).



가정예배 2020613()

 

제목: 하나님을 만남(111:1-10) 찬송 344(545)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체험을 하고 싶어 합니다. 특별한 체험이 있어야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평범하다고 여기는 일상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교제하고 대화를 한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만남은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있게 하고, 따라서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만남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도 하나님을 아는 것과 연결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뜻을 가지고 행하시는가를 낱낱이 계시해주고 있기 때문에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행하신 크신 일을 기이한 일이라고 하며, 그 일이 여호와의 은혜와 자비에 의해 행해진 일로 말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 여호와의 일은 그의 언약으로 인해서 행해진 일이고 그 일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양식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9절에서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백성을 구속하신 일이 여호와께서 은혜와 자비로 행하신 크신 일이고 기이한 일이며, 이 일이 구속받은 백성들에게는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놓고 더 이상 간섭하지 않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간섭하시고 다스리심으로 우리가 구원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붙드십니다. 이것이 은혜와 자비로 행하시는 기적이며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런 분임을 알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만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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